
☆ 캅카스(코카서스)산맥이란?
쉽게말해 흑해와 카스피해의 중앙지점을 잇는 수평선 산맥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선 산맥)을 말한다. 캅카스 산맥 남쪽과 동쪽을 아시아로, 캅카스산맥 북서쪽을 유럽으로 정의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구분산맥)
☆ 코카서스인이란(인도-유럽인)?
코카서스산맥에서 발흥한 유목민들이 현대 유럽인과 중동인, 인도인의 기원이된다는 이론에 기반한 원시조상.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가설중에 쿠르드가설이 정설화되고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봉분형무덤을 쓰는 얌나야인의 후예라는것이다.

☆ 아리아인이란?
현대 인도 문화의 조상들. 먼옛날 인도 북부에 자리잡아 베다철학을 완성하고 원주민 드라비다인을 밀어내고 인도전통문명을 만들어낸 외부유목민들. 이들의 언어가 드라비다어와 다르며 유럽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것에 착안, 인도-유럽어족으로 민족을 분류하였고 당연히 코카서스인 기원으로 추정할수 있으며 코카서스인의 어느갈래로 이어진 후손인지 판별하는 문제만이 남은것. 얌나야 문화 유목민들이 현재 인도와 동유럽에 공통적으로 뿌려진 y하플로그룹 R1a의 마커로 추정됨. 따라서 아리아인의 조상은 얌나야 족속으로 추정된다. 얌나이인들의 후예인 신타슈타, 안드로노보에 이르러 그들이 아리아인이라는 결정적인증거, 즉 차크라를 발명하였다. 따라서 아리아인은 얌나야인의 후예중 하나인 신타슈타인, 안드로노보인이다.

☆영상내용 요약
18세기 뱅골의 대법관이자 언어 학자였던 윌리엄 존슨은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의 공통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모두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북부 힌디어가 인도유럽어족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반면 인도남부 드라비다어 전혀 다른 기원의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죠. 이는 아주먼 옛날 산스크리트 집단이 인도 북부로 진출하여 기존 드라비다 언어를 몰아내고 대체하였음을 시사했습니다. 이들 집단은 스스로를 고귀한 민족을 뜻하는 아리아라 칭했는데 이란 국가명이 바로 아리안의 땅을 의미하죠. 윌리엄 존스는 인도 북부와 남부의 차이를 토대로 아리안 침략 가설을 제안하였고이는 오랫동안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 윌리엄 존스는 인도 북부와 남부의 차이를 토대로 아리안 침략 가설을 제안하였고이는 오랫동안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19세기 프란스 보프와 슐라이어 막스 밀러와 같은 독일계 언어학자들은 인도 유럽 어족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막스 밀러는 원시 인도유럽 어족이 코카서스에서 발언하여 유럽과 인도 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출했다는 두갈래의 아리안 개념을 제시하였고 제국 주회를 옹호했던 영국의 허버트 리슬리 아리안 침략 이론을 확장하여 카스트 제도란 검고 왜소한 원주민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리안의 지배 이념이라 결론 내렸습니다
카스트 제도에 대한 허버트의 인종주의적 발상은 현재까지 별 의심없이 대중들에게 사실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순수한 게르만 혈통과 우생학에 집착했던 히틀러는 엉뚱하게 그 원류를 아리아인게서 찾았고 20세기 최의 학살 정책을 치는 나치즘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아리안 단어에 덧 씌어진 부정적 인식 때문에 최근에는 아리안 대신 원시 인도 이란으로 표현하고 있죠.
아리안, 즉 원시 인도 이란어 족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5천년 전 폰티 카스피에 대초원의 얌나야 문화가 제시됩니다. 카스피 초원은 수많은 유민과 기병 전사들의 문화가 꽃핀 장소이자 후대 스키타이의 주요 활동 영역이었습니다 얌나야인은 역사상 최초로 승마술을 익히고 수레를 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수의 얌나야 유골에서 승마와 관련된 전형적 골격 변화들이 관찰되며 수직 구덩이 형태의 수열식 무덤에는 수레가 함께 묻히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최초의 말 사육은 얌나야 이전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말고기는 전체 육류 섭취량의 25% 정도를 차지했죠
얌나야인은 비교적 순한 암말과 거세된 숫말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승마술 익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얌나야 문화는 동시대 유럽의 콜디드 웨어 문화 (끈토기문화) , 코카서스의 쿠라 아락세스 문화, 알타이 지역의 아파나시에보 문화와 밀접하게 교류했습니다. (얌나야문화는 캅카스(코카스)산맥 북쪽에 위치, 서쪽은 유럽 동쪽은 몽골러시아로 이어진다)
또한 후대 스루브나야 문화, 신타 슈타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마리아 김부타스는 이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 쿠르간 문화로 정의하였습니다. 쿠르간이란 깊은 구덩이의 매장실측 후 흙더미를 쌓아올린 봉분형 무덤을 말합니다
쿠르간 장식은 6천년 전 폰티 카스피에 대초원에서 시작되어 2천년 전까지 유럽과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넓게 퍼져 나갔습니다 얌나야인은 유전학적으로 동유럽인 북유럽인에게대략 50% 가량의 유전적 기여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y 염색체 R1 분포도는 이들의 확산 모습을 잘보여줍니다 4천년 전쯤 신타 슈타 문화와 안드로노보 문화에 이르러 유목민들은 또 하나의 혁신적 발명품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바로 바퀴살 바퀴 '차크라' 입니다
기존 통나무 바퀴수레는 무게가 500kg 정도로 속도가 매우 느렸으나 경량 휠 구조의 차크라 덕분에 마차와 전차의 기동성이 획기적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전사들은 빠른 천차 위에서 장궁과 투창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더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바퀴살 전차 기술은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고대근동의 역학 관계와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박트리아에서 건너온 아리안계 전차부대가 미타니 왕국의 집의 엘리트 층으로 자리 잡았고 고바빌로니아를 점령했던 이민족 카시트인 또한 안드로노보 계열로 추정됩니다 즉 아리아인의 정체는 얌나야 문화에서 시작하여 스루브 나야 신타 슈타 안드로노보 문화로 이어지는 대초원의 유목민 집단입니다.
아리아인은 고속 주행의 이륜 전차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차크라를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4천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및 이란 고원, 인더스 지역으로 진출하였고 미타니 왕국과이란의 아베스타 시대 인도의 베다 시대를 이끈 주역이 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인도로의 이주와 정착은 단기간의 침략이 아니라 수백년에 걸친 매우 느린 확산 가정으로 파악됩니다 최근 학계는 아리안 천차 부대가 인더스 문명을 멸망시키고 드라비다인을 몰아냈다는 아리안 침략 가설을 부정합니다 이들이 인더스 지역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인더스 문명은 수명을 다하고 몰락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더스 문명의 쇠퇴는 외부 적들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가문과 살림 파게 토양의 황폐와 탈 도시와 같은 내부적 원인이 우선했던 것으로 조사됩니다 도시 건설에 필요한 벽돌을 굽기 위해 나무를 지나치게 벌목하여 숲이 사라졌고 강수량 감소와 토양의 염분화로인해 식량 생산이 급감하였다 도시 유적에는 전쟁에 의한 파괴 및 학살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서서히 쇠퇴하고 버려지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기후변화는 대초 원에도 악영향을 미쳐 가축을 키울 목초지가 줄어들었고 유목민의 이주를 가속화 시켰습니다 인더스 지역에는 황폐화된 소규모 락만 남아 있었고 세련된 차크라 전차를 끌고 온 이주민들은 빠르게 사회 지배층으로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고대인 도에서 왕은 차크라를 돌리는 자, 차크라 바르틴 (전륜선왕) 으로 불렀습니다. 아리아인은 원주민 드라비다인과 수세기에 걸쳐 혼합되었고 현대 인도 혈통의 밑바탕이 확립되었습니다.
아리아인이 인도의 이주한 뒤 생활 모습은 종교 창가 리그베다를 통해 알 수 있으며 기원전 1700년부터 기전 500년 까지를 배다 시대로 정의합니다 리그는 찬가 베다는 지식을 뜻하며 놀랍게도 문자 없이 구전으로 그들의 지식과 종교관을 천년 이상 정확하게 전수했습니다
초창기 베다 사회는 씨족 중심의 가부장제 였으며 족장과 원로원을 중심으로 정치 체계가 운영되었습니다 이들은 현세 지향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봉헌 의식에 과도할만큼 정성을 다했습니다 베다 텍스트의 주요 내용은 신들에 대한 믿음과 찬양, 복을 비는 주문으로 (만트라) 가득차 있죠 (베다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형해석이 이루어졌고 4단계의 베다시대로 분류되며 가장 마지막 단계가 우파니샤드이다.)
사제들은 2만개가 넘는 찬송가를 토시하나 빠지지않고 액센트와 음까지 철저하게 암기해야 했는데 평범한 두뇌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찬양이 대상이 되는 신들은 태양 비바람처럼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자연을 상징했습니다 이는 유목민의 특성상 초원에서 가축을 키우고 별에 잠들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다 신에 따르면 하늘의 아버지 디아스 피타와 땅의 어머니신 프리트 사이에서 인드라와 아니 우스를 비롯한 주요 신들이 탄생했으며 디아우스 피타는 제우스 파테르와 동일한 어원으로 추정된다. (Dyaus Pitar = Zeus Pater ) 천을 장하는 최고신 인드라는 동양에서 불법의신 제석천으로 번역되며 강력한 번개 무기 바즈라를 사용해 가뭄을 일으키는 악룡 브리트라를 무찌른다. 이것은 바빌론 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이 티아마트를 물리치는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인드라는 제우스와 토르, 바빌론의 아다드, 히타이트의 테슙과 거의 동일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불의신 아그니는 결혼과 출산 장례와 같은 변곡점의 통과의례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며 프로메테우스와 유산한 상징성을 갖습니다 제사 의식은 야즈냐로 불리는데 재물을 태울 때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인간의 바램이 신들에게 전달된다 믿었습니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불은 소멸과 정화의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베다와 아베스타의 종교관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였습니다
몸속에 내제된 불 덕분에 사람들은 뜻 한 숨을 쉬거나 체온을 유지할 수 있고 음식은 몸속 불을 유지하기 위한 장작이라 믿어졌고 사제들은 불을 피우며 정확한 발음과 몸짓으로 영험한 주문인 만트라를 낭송했습니다 소마는 인드라 신이 악신을 물리칠 때 힘을 북돋아주는 신성한 음료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하오마로 (아베스타의 하오마) 불리는 이 음료는 유목민들이 종교의식 혹은 전투 때 마시던 마약성 각성제로 추정되며 유력한 후보로 환각버섯 혹은 매스 암페타민의 원료인 마황이 거론됩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미트라가 낮에 태양이라 바루나는 밤의 달을 상징하는 상보적 존재로 서로 짝을 이루며 세상의 질서를 소화합니다 조로아스터 교에서 태양신 미트라는 로마제국으로 건너가 독특한 신비주의 색채로 변화하였고 초기 기독교의 강력한 라이벌이되었죠 .. (중략)
===================
사족)
* 제국주의 시절, 서구와 동양의 문명은 충돌하였고 유럽인들은 동양인과 다른 자기의 특별한 인종성을 정의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도출된 개념이 코카소이드이고 이에 대비되는 인종이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이다. 얼핏보면 동북아인은 눈이 찢어지고 희미한 골상이고 백인은 눈이크고 뚜렷한 질감의 골상을 가지고있다. 흑인도 유럽과 중동인의 혼혈이 없는 사하라 남쪽지역 흑인을 보면 굉장히 다르게 생겼다. 그래서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라는 단순한 삼분법이 생겨난것이다. 유전자 데이터를 검출하지도 못했던 옛날꽃날 원시시대에는 그랬던것이다.
*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아라랏산은 캅카스 산맥의 최남단 끝점이라고 볼수도있고~아닐수도있는~애매한 산이다. (터키 동쪽에 위치한 산) 얌나야 족속은 북캅카스족, 즉 조지아의 북쪽지역과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지역의 족속이라 할수있다.
* 셈족어처럼 성경에 빗대어 분류하려면 야벳어족이라고 말할수 있겠지만 인도-유럽어족이 정식명칭이다(야벳의 후손들이 메데제국을 만들었고 메데제국은 인도유럽어의 한갈래인 이란어족으로 추정됨)) 엄밀히 말하면 성경대로라도 중동은 함족과 셈족이 섞여서 살았고 이란도 야벳족과 셈족(엘람)이 섞여살았다. 결론적으로, 셈족어는 이집트에서 -> 이스라엘 -> 이라크까지 즉 성경의 무대가되는 지역들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공통된 모습에 착안, 같은 어족으로 분류하고나서 이름지은게 셈족어라는것일뿐. 실제 성경 족보랑은 무관하다.
* 고대이집트어는 셈족어가 아니다. 현대 이집트어인 아랍어는 셈족어이다.